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/생애 (문단 편집) ==== 말년 ==== ||<:>[[파일:바흐 미사.png|width=550]]|| || 미사 b단조 중 '십자가에 못 박히시고''Crucifixus''' 부분의 자필보, 1749년경 || 이어 1748년부터 다음해에 걸쳐 최후의 대작 《푸가의 기법''Die Kunst der Fuge, BWV 1080''》의 작곡이 진행되었으나 완성을 보지 못했다. 이 세 대작과 더불어 바흐가 마지막으로 추진했던 프로젝트는 미사 b단조의 마지막 부분을 써나가는 것이었다. 그 후 죽기 직전에 제자들의 도움으로 코랄 전주곡 BWV 668을 손본다. 1749년 5월에 [[뇌일혈]]로 졸도하여 시력이 크게 나빠졌으며, 1750년 3월 [[존 테일러(1703)|존 테일러]]라는 [[돌팔이]] 안과 의사에게 두 차례의 '''[[백내장]] 수술'''을 받아 더 악화되었다고 한다. 이 존 테일러는 엉터리 치료로 헨델도 실명시킨 아주 [[인간 말종|몹쓸 인간]]이었는데, 자세한 것은 [[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]] 문서 참고.[* [[MBC]]의 [[신비한TV 서프라이즈|서프라이즈]]에서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[[http://www.newsen.com/news_view.php?uid=201302241148191110|다루었다]]. 이 기사에서는 헨델이 존 테일러의 수술 8개월 후 사망했다고 해 놓았는데 실제로 헨델은 수술 후 8년 뒤에 사망했다.] 바흐는 이후 3개월 동안 병상에서 투병하게 된다. 그러다가 세상을 떠나기 10일 전에는 갑자기 눈이 좋아졌는데, 몇 시간 뒤에 다시 쓰러졌다. 바흐는 1750년 7월 28일 저녁 8시 15분,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조용히 [[사망|마지막 숨을 거두었다]]. [[향년]] 65세. 그의 유산은 1160탈러(대략 1억원 정도)였다. [각주][include(틀:문서 가져옴,title=요한 제바스티안 바흐,version=813)] [[분류:요한 제바스티안 바흐]][[분류:인물별/생애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